다시 찾은 수리산

잡담 2008. 8. 31. 20:30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자고 아내와 전날 다짐하고 잤으나 예상대로(?) 출발은 해가 중천에 뜬 12시. 그래도 출발한 게 어디여.

4425번 타고 돌고 돌아 문예회관 사거리서 내려 뙤약볕을 피하여 태을초등학교 옆의 입구를 겨우 찾았다. 지난 11월에 혼자 찾을 때도 입구 부근서 길을 잘못 들어 헛탕을 쳤는데 겨우 9개월 지난 오늘 아내를 데리고가서 같은 실수를 범했다. 날도 더운데 아내가 입산 전에 살짝 짜증이 난 모양. 다음에는 절대 안 잊으리라. 태을초등학교를 지나서 학교 건물을 왼쪽에 끼고 좌회전하여 오르면 된다.



혼자서 오르고 내리면 2시간 코스인데 아내와 쉬엄쉬엄 자연도 둘러보며 등산하니 총 4시간 정도 걸렸다. 난 자연을 둘러봤다는 표현보다 아내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최소한의 반응만 보여주며 답답한 마음을 억누르고 갔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만을 목표로 주변도 안 둘러보고 서둘러 오르는 나로서는 아내에게 배울 점이 참 많다. 난 자연과 어울리는 여유를 배워야 하고 아내는 힘든 걸 약간만 참고 땀 흘릴 때 느끼는 보람을 만끽한다면 금상첨화겠다. 수리산을 4시간 걸려 오르내렸다하면 아는 이들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일요일이라 오르는 길 쪽으로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등산 동호회에서 왔는지 여럿이 무리지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중 어느 여성분이 다른 남성을 향하여, " 코스모스님 어디 갔는지 아세요?" 라고 묻는 소리를 들은 아내는 산을 오르며 여러번 킥킥 웃는다. 온라인 동호회의 오프라인 모임같은 건 남의 얘기같은 우리는, 그런 관계와 호칭이 낯간지러운 게 사실이다.

정상을 앞둔 10m 거리 앞에서 아내가 느닷없이 정상에 아이스크림을 팔면 자기도 하나 사달라 한다. 산 꼭대기서 웬 아이스크림이람. 실소를 터뜨리며 그러고마 했는데 정말 산에 하드를 파는 아저씨가 있다. 아까 내려가는 등산객 중 하드를 입에 물고 가는 사람이 있었던 게다. 비비빅과 보석바 단 두 종류인데 하나당 1,500원이다. 아내는 꽝꽝 언 비비빅을 손에 들고는 내게, 하드가 입술에 달라붙은 모습을 보여주며 장난치려다가 입술이 하드에 살짝 벗겨져 피봤다. 쯧쯔... 그러면서도 다음에는 보석바를 먹는다며 베시시 웃는다.

아침을 그런대로 먹고 왔는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하산길에서는 둘 모두 다리가 풀려 고생했다. 곯은 배를 움켜쥐며 서둘러 병목안 쪽으로 내려와 오리고기를 먹고자  했으나 막판에 또 마음이 변하여 비빔냉면과 물냉면을 각각 먹었다.

예전 같으면 등산 후 귀가하면 씻는 둥 마는 둥하며 시간과 관계없이 잠자리에 들 것이 뻔했을 아내가, 그렇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옷장의 옷을 죄다 끄집어내어 옷장 정리를 하고 옥수수도 쪄먹고 1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드는 모습이다. 과연 개학과 동시에 뭔가 큰 맘을 먹고 변화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일단 활력넘쳐 보이는 아내가 반갑기는 하지만 너무 갑자기 변하려하면 역효과가 날 것같은 불안감은 아직 공존한다. 여보 갑자기 변하지 말고 천천히 발전해 나가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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