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국기봉 산행

잡담 2008. 11. 23. 19:36
아내도 없고 하여 오랜만에 관악산에 올랐다.
집에 있으면 분명 아침부터 인터넷과 TV 오락물에 빠져 무의미한 하루를 보낼 게 뻔했다.

집에서 6시25분에 출발.
역시 해 뜨기 전에 마시는 아침공기는 언제나 상쾌하다.

달이 진다... 달이 진다.




안양 종합운동장을 지나 산림욕장에 도착. 42분에 공식(?) 출발선을 끊었다.

산림욕장이 맞나? 삼림욕장 아니던가?




어제 국기봉에 오르려 검색을 해보니 내가 가는 코스로 1시간이면 가능하다고 적혀 있어
왠지 그 시간 내에 정상에 도착하지 못하면 내 몸이 비정상일 것 같은 어리석은 강박관념.

갈림길이 나와도 안내표지판이 없어 반대편 입구쪽으로 잘못 내려가다가
약수터의 아저씨께 물어 다시 올라와 전망대 쪽으로 향했다.

멋드러진 소나무 터널숲을 지나 계단에 오르기 시작하니 벌써 해가 떴는지 환해진다.

중간쯤 왔으려나. 누군가 소원을 빌려고 쌓아놓은 돌탑과 그 옆으로 고개 내미는 햇님.


현장의 느낌을 사진에 그대로 담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간간이 사진도 찍으며 1시간 안에 가려니 숨이 차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중간에 한번 쉬었다.
산행을 이렇게 맛없이 오르다니 어리석은 중생아.

바위 있는 곳에 한무리 산악인들이 물을 마시며 쉬다가 내가 바위에 올라 전경을 한번 둘러보니
"저 아저씨께서 아직 산에 적응을 못 하시나 보다."
며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 무리 때문에 약간 망설이는 게 그리 보였다 보다.
"짐이 많아서 그런가 보지."
"아냐, 짐 하나 없이 맨 몸이잖아."
"오리털 잠바를 입었다 들었다가... 하하하~"
무에 그리 재미있는지 남녀 댓명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역시 사심이 없구나. 처음보는 사람도 저렇게 대놓고 대화소재로 삼고.
살짝 불쾌했지만 무시하고 지나친다.

바위를 붙잡고 헥헥대며 오르다보니 어느 새 태극기가 펄럭이는 정상이 보인다.

정상에서. 뒤에 보이는 것이 KBS 송신탑인가?

 


정상 도착시각 7:40. 소원대로(?) 1시간 안에 도착했다.
글 적으려 검색해보니 관악산에는 이런 국기봉이 11군데 있다고 한다.
내가 오늘 다녀온 곳은 그 중 육봉의 국기봉이란다.

검색 사이트에 "관악산 11개 국기봉" 이라고 검색하면
산 좋아하는 블로거들이나 카페 모임의 무수한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루에 그 11개의 국기봉을 모두 오른 분들이 이렇게 많다니. 정말 대단하다.

올라온 길과 되도록 다른 길로 내려가고자 정상에 계신 어르신께 길을 물으니
과천쪽으로 가는 길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가 너무 험하여 내려가는 길로는 추천하지 않으신단다.
20대라면 오호~ 그래 얼마나 험한지 보자며 그리 갔겠지만
이제는 험하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갈 엄두를 내지 않게 된다.

땀이 나 점퍼를 벗었더니 금세 추위가 몰려온다.
정상에서 15분 정도 쉬다가 어르신이 추천해주신 바로 옆 능선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상 오를 때 택한 능선. 올라갔던 길을 쳐다보며 내려가자니 왠지 밀려오는 뿌듯함.



올라온 능선 바로 옆의 능선. 내가 내려온 길이다.



내려가는 동안 전망대에 다다를 때까지 단 한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새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산 속을 혼자 걷자니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이런 곳에서 다치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에 약간 긴장도 되었다.
사람이 없으니 이 길이 맞는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평지에 거의 다와갈 무렵 만난 계곡. 아무도 없어 바위에 사진기 올려놓고 독사진 제대로 찍어봤다.



다시 산림욕장 입구에 다다른 시각 8:52. 사진을 안 찍고 와서 오른 시간보다 조금 덜 걸렸다.

오를 때는 어두워 못 봤는데 입구께에 안내도가 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연중행사로 가끔 가는 목욕탕에 다녀왔다.
산행에 목욕까지 하고나니 집에 가서 밥하기가 귀찮다.

집 가까이 있는 설농탕집에 가서 설농탕 한그릇 뚝딱 해치웠다.

그 많은 일을 하고 집에 왔는데도 11시 조금 넘었다.

역시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정말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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