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으로 시작한 새해 첫 출근

잡담 2010. 1. 4. 23:00
폭설이 내렸다.

어제 안양역의 롯데시네마에서 아바타를 보고 나온 밤 12시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택시를 타고 집에 온 그 짧은 10분 동안, 가로등에 비친 아스팔트 바닥이 하얗게 되어 있었다.
내일 눈 많이 와서 바닥 얼면 출근길 장난 아니겠다.
그렇게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내뱉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

평소보다 5분 정도 일찍 출발한 출근길은 버스에서 인덕원, 인덕원에서 사당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평소와 별다름 없었다. 하지만 잠실 방향의 2호선으로 갈아타는 통로에 사람이 너무 많아 옴짝달싹 못하는 순간부터 폭설로 인한 교통 대란이 실감이 났다.

8시 36분이 되었는데 갈아타는 곳으로 향하는 계단도 밟아보지 못하여 이러다가 지각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그 때의 지각이란 10~20분의 지각을 말하는 거였다.

하지만 겨우 도착한 2호선 승강장에서 수대의 지하철을 그대로 보내며 1시간을 훌쩍 넘기는 동안 오히려 mp3 player의 음악을 즐기며 지각은 염두에 두지도 않게 되었다.

간혹 성난 승객이 누구 나오라고 그래~ 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몰려있는 대기 승객 때문에 열차에서 내리지 못해 좀 내리고 타요~하며 짜증 백만배 버럭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정도면 다들 잘 참고 견디며 질서를 지키는 편이었다.

내 앞에 한줄 정도를 남기고 빈차가 오는 바람에 탈 때 문 앞에서 매달리지 않아 편했다.

오늘 밤에도 25cm 정도의 눈이 더 올 예정이란다.
내일은 예정된 대란이 일어날 듯하니 다들 서둘러 오늘같은 단체 지각 사태는 면하기 바란다.

분명 천재지변이라 말 할 수 있는 원인으로 많은 사람이 새해 첫날 지각을 했지만
내 의지로 0.1% 나마 결과가 나아질 수 있는 일이라면 이 모든 것이 나의 부족함이라 생각해야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모든 일이 날씨 때문이고 일기 예보 탓이고 바글바글한 도시의 인간들 때문이라 생각하며 투덜대고 인상쓰며 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설경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함에 감사히 여길 것이다.

더 나아가, 전쟁에 비견되는 그런 출근길을 경험하게 해준 직장이 있음에 감사히 여기게 될 것이다.

오늘도 자연은 나에게 깨우침을 주는 하루였다.

급할수록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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