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잡담 2006. 12. 25. 15:08

금요일 퇴근 길에 아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려 회사 앞 큰 팬시점-말하자면 문방구군.-에 들렀으나 늦은 시각이었는지 문을 닫았다.
지갑을 살 요량이었는데 근처에 마땅히 팔 만 한 곳이 없을 듯하여 어찌할까 생각만 하다가 집에 도착했다.

아직 토요일도 남았으니 살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이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집 근처 어디서 팔지 알 수도 없고 중요한 건 아내 몰래 구입해야 하는데 딱히 둘러대고 외출할 핑계를 못 찾는 사이 어느 새 이브의 해가 밝았다.

그런데 아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야만 하는 운명이었는지 이브 아침부터 징조가 나타났다. - 끝내 몰래 선물 살 기회가 없었으면 안 살 생각이었나 보다. ^^-
잠을 깬 아내가, 얼마 전 새로 산 베갯잇의 옆구리가 튿어진 걸 발견했다. 게다가 오전에 부모님댁에 가기 전 Kim's Club에 들러 술을 사야했다.

할인점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술이 있는 곳을 찾으러 가며 아내가,
"내가 베갯잇 교환하러 갔다 올테니 자기가 술 사와요."
하고 할인점 건너편에 있는 백화점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부랴부랴 1층으로 올라가 여성용 지갑을 고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낭패였는데 다행히도 적당한 가격에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보였다.
점원이 선물 포장하는 것을 보며 러브 액추얼리에서 미스터 빈이 바람 피우는 남편의 목걸이 선물을 포장하는 장면이 떠올라 마음은 급했지만 웃음이 나왔다.

계산을 하고 밑의 층에서 부랴부랴 술을 사 차 트렁크에 싣고 아내를 기다렸더니 느즈막히 도착하는 아내. 나보고 좋은 선물 잘 고르라고 신께서 일부러 시간을 주려 했는지 아내도 베갯잇을 바꾸고나서 그 새를 못 참고 쇼핑을 하고 왔단다. 에이그 이쁜 우리 아내.

자, 이제 선물을 주는 크리스마스 아침까지 어떻게하면 들키지 않을까 고민해야 했다.
1단계, 집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릴 때 아내보다 늦게 내리며 조수석 보관함의 선물을 잽싸게 품에 넣기.
2단계, 집에 들어가며 왼쪽 옆구리에 끼워 넣은 선물을 들키지 않도록 아내 왼쪽에 서서 걷는 치밀함 잊지 말기.
3단계, 집에 들어서서 아내가 건넌방에서 옷 갈아입는 동안 침실 뒷켠에 선물 몰래 숨기기.

자자, 이제 준비단계는 모두 성공!
그런데 아차!
정작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아내가 나와 동시에 잠이 깼다.
아직 머리맡에 선물을 못 올려 놨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어나자마다 머리 위를 두 팔로 휘저으며 선물을 찾다가 아무 것도 잡히는 것이 없자 실망하는 아내.
주위를 환기시키고자 아내에게,
"오늘은 뭘 하고 하루를 보낼까?"
하자 아내가 하는 말,
"나한테 줄 선물 고르면서..."
허걱!

이걸 어쩐다. 에라 모르겠다~
유치하지만 왼손으로 아내의 눈을 가리며 코를 들어올리는 장난을 치고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 소리로 위장하여
땀나는 오른손으로는 몰래 머리맡에 선물을 올려놨다.
앗~싸 성공! 아내가 눈치채지 못 했다.

"아~함, 난 이제 일어날래."
뿌듯한 마음으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데 아내가 또 어리광을 피운다.
"아~잉, 선물, 선무~울"
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어! 거기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두고 가셨네."
아내의 탄성을 뒤로 하고 문을 닫고 나왔다. 입가에는 미소가 흐흐흐.

이로써, 연인들만 한다는 '크리스마스 선물 뒤늦게 마련하여 몰래 주기 007 작전'은 성공리에 마쳤다.
정확히 그로부터 2시간 가량 아내의 입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끊이지 않았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아내는 선물을 사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산다. ^^

추가: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면 아내가 이상한 사람 될까 봐 몇 자 더 적는다.
이번에 내가 준 선물은 지난 2년 동안 처음이다.(생일 선물도 안 사준 걸로 기억한다. 퍽~)
역시 아내는 남편 길들이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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