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한 용서

잡담 2009. 2. 9. 21:28
5시께 전화 상담 도중 실언을 했다.

가뜩이나 일이 안 풀려 속상한 상대방에게 더이상 그런 말 하지 말라 했다.

6초 정도 정적이 흐르다가 알겠다며 끊은 상대는, 10분 뒤 다시 전화해서 내 이름을 물었다.
전화를 끊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괘씸해서 전화했단다.

원하는대로 해주지 못해 죄송하다 한마디면 그런가 보다하고 포기할텐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분통이 터진다했다.
첫 전화를 끊고 내 스스로도 내가 심한 말을 했다 싶어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오히려 사과할 기회를 줬으니 고마와야 했다.

아까는 내가 실언을 했다, 사과드린다하고 상대는 알겠다하고 끊었다.

입사 후 전화 상담을 하며 오늘까지 4번 정도 껄끄러운 일이 있었는데 이전 3번은 상대나 나나 서로 어느 정도의 잘못이 있었음에도 일방적인 매도를 하는 상대에게 열받아 끝까지 사과는 없었으나 오늘 일은 말하면서도 아차 싶을 정도로 내 잘못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두번째 전화에서 사과하는 내 말투가 떳떳하지 못하고 끝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던 게 집에 돌아오는 내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당당한 사과를 하지 못 했을까. 결국 상대에게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게 자존심 상하여 말꼬리를 흐렸던 건 아닐까. 잘못을 인정한다면 남자답게 상대 앞에 머리를 숙이고 용서를 구하는 게 도리인데 말이다.

다른 때는 별로 티 안 나다가 이런 때보면 내게도 그 알량한 자존심이란 게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긴 스스로 자존심 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어디 있겠나.

세상에서 제일 분통터지는 일이 오해받는 것이고
가장 힘든 일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일 것이다.

이번에는, 잘못을 인정하고 떳떳하게 용서를 구하는 경험이 별로 없어 그랬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 잘난 맛에 살았으니까. 용서 구할 일을 하지 않는 게 상책이지만 혹 그런 일이 또 있다면 다음에는 후회없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전에 크게 싸웠던 세번의 경우에서도 내가 먼저 잘못을 인정했다면 결국 내가 이기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아니 승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의 평화가 일찍 찾아왔을텐데 말이다. 그 단순한 이치를, 정작 흥분했을 당시에는 잊는 게 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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