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왜 낳는가?

잡담 2009. 1. 14. 13:18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갖는다.

그건 사고방식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인간의 본능에 기인한다.

외로움이 느껴질 때가 혼기가 꽉 찼을 무렵이고, 그 본능에 기인해 결혼을 하면 사
랑하는 이를 닮은 2세를 낳아 함께 사랑으로 충만한 가정을 이루고픈 본능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족의 완성 단계라고도 볼 수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가족의 개념보다 부부의 개념으로 남는다.

아이를 낳기 전 타인의 양육 과정을 지켜보며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어떻게 하면 저렇게 훌륭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음, 저런 아이를 낳을까봐 정말 걱정된다. 저게 부모야? 애를 낳기만 하면 단가. 쯧쯔...

아이는 저절로 크지 않는다.
가장 큰 틀은 부모의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만큼의 업보를 가지고 태어난다고들 말한다.
가정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자기 밥그릇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는 표현으로도 말한다.

그런데 그 믿음이 확대되어 아이의 인성 또한 자기 스스로 타고나 가꾸며 큰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아이는 저절로 큰다고 믿는 부모 혹은 예비부모가 있다면 정말 크나큰 실수라고 말하고 싶다.

난 2세를 갖지 않고 싶다.
뭐 그거야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를 수 있는 문제지만
적어도 결혼을 한, 한 여자의 남편으로 본다면
난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 일방적인 견해를 가진 고집스런 남자일 뿐이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그런 내 입장을 알고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며 내 생각도 변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결혼 9년차에 접어든 지금도 내 일방적 생각은 변함이 없고-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오히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과 안 낳기를 잘 했다는 아내의 생각이 반반 정도 되었다고 한다.

내 입장이 일방적으로 밖에 표현될 수 없는 것은
그런 내 생각을 아내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이유다.
간혹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며 그 소재가 나오면 아내도 내가 아이를 안 낳고 싶어하는 이유를 진심으로 듣고 싶어한다.

그런데 참 모순이다. 내 스스로도 그런 물음에 똑 부러지게 대답을 못 하는 것이다.
아마도 머릿 속에는 수만가지 이유가 들어있지만 입 밖으로 내뱉기에는 정리가 안 되어서 그런가 보다.

아이를 안 낳으면 자유로운 이유도 있을테고
낳았을 때 겪게 될 수많은 예견된 갈등상황을 안 겪어도 될 것이며
우리나라의 미친 교육현실에 엄두를 못 내는 부분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건데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두렵기에 자신감도 없다.

아이를 낳으면 내가 변해야 하는데 내가 정말 잘 변할 수 있을까.
주위 사람들(사회 분위기)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내 교육관을 지켜낼 수 있을까.-내 교육관은 무엇인가?-
아이와 관련하여,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과의 견해 차를 잘 극복할 수 있을까.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혼자서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이를 낳으면 우리는 지금보다 진정 더 행복할까.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자기 아이는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게 애 낳기 싫어하는 사람도 한명만 낳으면 더 낳자 한다고 한다.
애 키우는 재미가 생각 외로 재미있을 수도 있고 예상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

내가 중요시 생각하는 건,
아이를 좋아하고 안 하고의 문제
키우는데 육체적으로 힘들거나 덜 힘들거나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아이를 낳는다면 어느 부모가 자기 아이를 싫어할 것이며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보육을 등지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일단 낳아 봐. 알아서 다 잘 큰다. 넌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 사람사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내게 이렇게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를 낳기 전 적어도 부부끼리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아이가 크면 의사를 시키고 싶다는 식의 내용 말고
어떤 아이로 어떻게 키울 것이고
예견된 갈등 상황을 끄집어내어 어떻게 서로 대처할지 미리 의견을 조율해보는 실질적인 내용과
상대방의 구체적인 교육관을 확인하는 시간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여행 가기 전 물건 챙기듯 그렇게 모두 철저히 챙기고나면 아이 키우는 게 만사 OK일까?
절대 아니다. 그러리라 기대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었는지 반드시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나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 아이 키우는데 있어서도 늘 의견이 일치하리라 쉽게 판단하거나
아무 생각없이 결혼했으니 아이를 가져야 한다는 사람.
보육의 서투름을 핑계로 한쪽 배우자에게 전담하고 나 몰라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준비단계가 필요하거나 그 단계를 건너뛴 사람들이다.

기술 문제가 아닌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걸 느꼈으면 한다.

모든 부모들이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아이를 낳고 키워도 이따구 사람들이 양산되는 각박한 대한민국이다.
미친 교육정책을 내놓는 정치가들.
정책 탓만 하며 정작 본인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애잡는, 불타는 교육열의 부모들.
약자에게서 돈 뜯어내는 사기꾼들.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람 등 뒤에 칼 꽂는 정신병자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교육은 다름아닌 가정교육에서 시작되며
그러므로 모든 부모는 철저한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공동체 사회의 구성원이고 그 구성원은 의지와 관계없이
서로 도움을 주기도, 또는 피해가 되기도 한다.
악순환의 반복보다는 선순환 구조로 가기 위해 내 스스로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점점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

다시 내 문제로 돌아와서...
그러니까 넌 애 안 낳을거니 상관없고 각박한 이 세상에 애 낳은 우리보고 잘 하라는 말 아냐. 비겁한 넘.


그래. 변명하진 않겠다. 비겁함 인정한다.

이쯤에서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아내와 많은 대화를 하며 서로를 이해시키려 노력하겠다.
성인이 되어서 2세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마음 속의 갈등을 가져왔지만-결론은 안 낳자는 신념이 굳어진 형국-
지난 한달 반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생각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지난 연말에는,

그래 여보, 우리 지금도 많이 늦기는 했지만 앞으로 2년 정도만 애 갖도록 노력해보자.

는 말이 목까지 찼던 적이 있다.
정말 나로서는 큰 결심이었던건데 결국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건 역시 두려움이 발목을 잡은 이유다.

주변사람과 2세 얘기를 할라치면 아내는
저 사람에게 그런 얘기 하지 마세요. 저 사람은 안 변해요. 포기했어요.

라며 내 쪽을 향해 손사레를 친다.

하지만 시간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아내는 내가, 변하지 않는 독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전의 나도 마음 속에서는 변할만한 여지가 있었지만 겉으로 표현만 안 했을 뿐이다.
아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서글프기도 하지만 내가 한 짓이 있으니 감수해야 한다.

난 여자에게 있어서 아이를 안 낳는다는 사실이 그렇게 큰 상실감을 가져다 주는 일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그저 서로가 감수할 수 있는 상대방의 단점 중 하나라고,
다른 단점 1개와 동등한 양으로 가늠했던 게 정말 큰 실수였다.

아이 안 낳아서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기쁨을 만끽하면서 살고 있잖아.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아내에게는 아니었다.

그 상실감과 공허함은
남들이 밤잠 설쳐가며 보채는 아이 달래는 시간에 영화를 보고 여행을 떠나도
절대 채워질 수 없는 큰 빈자리였다.

나이가 차면 그 빈 자리를 주변에서 끊임없이 확인시켜 긁어주기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는 내 계산도 맞지 않았다.

그러기에 아내는 불행하다.
불행한 아내와 함께 사는 남편이 행복할 수 있을까?

부부 관계에 있어 대개 여자는 사랑받는 느낌으로 존재감을 느끼지만
남자는, 자신이 여자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는 확인으로써 그것을 인지한다.
(안 그런 남녀도 있을테니 딴지는 사절이다.)
그 존재감의 확인은 결국 행복감으로 직결된다.

자신이 이렇게 원하는데 그것을 채워주지 않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느낌이란 있을 수 없고
그로 인해 나에 대한 믿음이 변질되며 친구들과의 만남 등 외적 요소로 그 자리를 채우려 한다.

가정 내에서는 기쁨을 찾지 못하고 겉도는 아내를 보면 나는 자연스레 부부의 관계에서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 밖에 없어.", "사랑해"라는 아내의 말은 진심보다는 형식적인 노력으로 밖에 와닿지 않는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아내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을 누릴만 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러기 위해 아이가 반드시 필요하다면 위의 검증 과정을 거칠 수 있다. 견해 차를 좁히고 내가 아빠가 될 자격이 있는지 검증받을 수 있다.
아내는 이미 자격이 넘치고도 남는다.

아이는 왜 낳는가?
공자도 모를 우문이다.
이에 답할 수 있는 이는 "왜 사는가?"에 대한 답변도 잘 알 것만 같다.

자녀를 10명도 넘게 낳은 부모에게 묻는다면 현명한 답을 줄 수 있을까?

저출산 시대 분위기에 반하는 얘기이지만 신중을 기할 문제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가족이 곧 나라를 이끌어가는 힘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란 울타리로 인해 생긴 아집불신을 낳고 세상을 각박하게 만드는 원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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