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잡담 2009. 1. 14. 21:03
지금은 민방위 대상이지만 예전 예비군일 때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6시간 짜리 훈련을 받고나면
훈련이 마무리될 무렵 어김없이 진행되는 코너(?)가 있다.

지휘자는 모든 예비군을 1열 횡대로 세워 운동장을 1회 왕복시키며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줍게 한다.
자자, 모두들 주머니에서 손 빼고~ 허리 구부리고~
다함께 조금씩 도우면 훈련이 더 빨리 끝날 수 있습니다. 자자~

예비군 훈련에서는 교육시간 틈틈이 쉬는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운다.

대부분의 예비군들이 담배를 피운다.
많은 이들이 지시를 무시하고 꽁초를 바닥에 버린다.
그리고 많은 예비군들이 청소작업에 참여한다.
우리가 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어떨까?

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쉬는 시간 본의 아니게 담배 연기를 맡는다.
피우지 않았으므로 꽁초를 바닥에 버리는 일은 없다.

버리지 않았으므로 꽁초를 주우라는 지휘관의 말을 따르지 않을까?
아니다. 처음에는 줍는다.
주우라고 했으니 줍는거고 빨리 끝날 수 있다는 말에 더 주워 휴지통에 버리는거다.

그런데 참 어이없다.
"꽁초는 휴지통에"라는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도 전혀 아랑곳않고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침까지 뱉었던 사람들은 정작 청소 시간에 참여 않고 주머니에 손 넣고 주변 예비군과 희희낙락거린다.

그런 모습을 목격조차 하지 못하고 묵묵히 청소를 하던 사람들도 횟수를 거듭하면서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불합리하다.
난 담배를 안 피웠는데, 난 시키는 대로 담배 피고 휴지통에 버렸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꽁초를 줍는데 저들은 뭐지?
나는 왜 이걸 줍고 있나?
본전 생각이 나고 손해보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에라 나도 안 주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 자기만 안 줍는 게 아니라 청소하는 이들을 가리켜 '저거 바보아냐'라며 속으로 손가락질한다. 가만 있으면 쟤네들이 줍는데, 그래도 남으면 빠릿한 현역애들이 마무리하는데 추운 날씨에 왜 헛고생이냐.

자 모든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게되면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는 처음 버려진 그대로일까?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기에 비흡연자도 묵묵히 청소를 하고
바닥에 버렸던 이도 그 때만큼은 꽁초를 주워 휴지통에 담는다.
우리가 한 일이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운동장에 200여명이 모여서 하는 한가지 일도 그럴진대
하물며 수천만이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한 일들이 벌어질까.
그 모든 것들은 위의 담배 꽁초와 달리 누가 먼저고 나중이랄 것도 없이 우리 모두가 이루어놓은 총체적 불합리 덩어리이다.

사람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
손해보는 느낌에 "다시는 안 해!"하다가도
옆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 내 생각이 짧았어", "그래 좀 도와주자"며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바로 그런 공동체 의식, 주인의식,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초등학교 시절 도덕책에 나온 지고지순한 단어들이다.
언제 어디서나 기초가 중요한 법이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하사관이나 장교들이 그러는 일은 절대 없지만,
예비군들 청소시켜 놓고 지휘관이 앞에서 담배 피우며 노닥거리는 일이 있으면 안 되겠다.
이득을 따지지 않고 묵묵히 꽁초를 줍는 이들을 존경하고 격려해주지 못할망정 손가락질하면 안 되겠다.
그들이 이 시대의 영웅이고 선구자이다.
자기 자신의 맡은 바 일에 충실해야 할 때다.
꽁초 버렸던 넘들은 각성하고 누구보다 먼저 소매를 걷어붙여야 하겠다.

요즘 내가 말이 길어지고 잔소리가 많아졌다.
늙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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