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에 즈음하여.

잡담 2007. 10. 6. 01:27

다음주면 한글날이다.
언제부터인가 달력의 한글날은 빨간색에서 검은색이 되었다.
회사일을 하루 쉬고 안 쉬고를 떠나
다른 어떤 날보다 한글날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유일하게 우리 것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이 한글 뿐이다.

현재 공휴일로 지정된 날 중에 한글날에 자리를 내주어야 할 날은 많이 있다.
하지만 공휴일 지정 문제는 여러 관계기관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섥혀 있기에
생각보다 쉽게 처리하기 곤란한 문제임을 이해한다.
하긴 공휴일로 지정되는 것이 뜻을 기릴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도 아니고.

음 서론이 길었군.
하려던 얘기는 그게 아니고,
요즘 영어에 환장한 우리 사회에서 한글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글의 입지가 좁아지는 게 비단 영어의 세계화로 인한 이유 뿐일까?

세상일의 모든 근본 원인은 자신에게 있음을 우리는 느껴야 한다.
우리의 것을 스스로가 제대로 쓰지 못 하고 있으니
거부할 수 없는 영어의 세계화 추세나
맹목적인 사대주의 등의 외적인 원인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말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조차
쪼가리 영어단어 섞어가며 얘기해야 세련되어 보이는 요즘 기업인의 추세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할 말 많지만 이 글에서 하려는 얘기는 그게 아니니 접어두고,
우리가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 너무나 쉽고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잘못된 표현,
' ~인 것 같아요.'에 대해 바로 잡고 싶어 잠시 끄적여 본다.

비를 맞으면서도, "비가 오는 것 같아요."
기분 나쁜데도, "기분 나쁜 것 같아요."
좋은 경치를 즐기면서도,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도대체 자신의 주관은 어디로 간 것인가?
기정 사실이나 자신의 감정 표현조차 이런 식으로 살짝 돌려 말하는 것은,
모든 일을 대충 넘기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올바르지 못한 사회 문화에 맞물려
점점 더 겉잡을 수 없이 퍼지는 암적인 존재와 같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그런 말투를 쓰며 같이 물드는
사회적 악순환이 반복이 되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에이~ 별 것도 아닌 것을 뭐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
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런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도 자신이 그런 말투를 쓰는지 인식하지 못 할 것이다.
표현 자체가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듯하지 않은가.

여기 좋은 방법을 하나 알려준다.
사실 내가 '~인 것 같다.'는 표현을 자주 쓰지는 않았지만
7~8년 전인가, 사람들이 하는 그런 표현이 귀에 거슬려
나라도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혼자 고안해낸 방법이다.

그런 말투를 하루만에 고치기 힘든 사람들은 우회적으로 이렇게 얘기하도록 노력한다.
"음~, 무릎이 아픈 듯한데..."
"소리가 잘 안 들리는 듯해요."
"저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별 차이를 못 느끼겠는가?
사실 위 일부 표현도 엄밀히 말하면 틀린 표현이다.
그냥 '아프다', '안 들린다' 라고 얘기해야 맞겠지만
'같아요' 만큼 무책임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듯하다'는 표현에서 발전하여 '생각한다'고 표현하게 되면
이제 그 무개념적이고 무책임한 말투는 다 고쳐진 것과 다름없다.

사소한 말투 하나지만 이런 식으로 고치면
자신의 생각한 바를 좀 더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태도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저 사람이 한 말이 단순한 감정 표현인지, 사실에 근거한 전달형식인지
아니면 의지를 담은 주장인지의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도를 잘 간파하여 얘기를 들어주는 자세가 대화의 기본 아닌가.
'같아요'란 표현을 자주 쓰는 것도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는 듯한 자신감없는 태도가 한 원인이라 할 수 있는데
자신이 바로 그 '상대방'의 역할을 하여 이런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데에 책임을 통감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대화는 독백이 아니니까 말이다.

아~ 이렇게 길게 적으려던 의도가 아니었는데.
난 왜 이리 시아버지처럼 잔소리가 많은거지? ^___^

마지막으로,
한글은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대로 쓰는 사람 때문에 우리의 것이 손상된다.
우리 것을 지키는 것은 나 자신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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